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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좋아 계속 그렸는데, 사람들도 나도 달라졌죠”

“그림 좋아 계속 그렸는데, 사람들도 나도 달라졌죠”

김정화 기자
입력 2022-06-27 17:34
업데이트 2022-06-28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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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작가 삶 바꾼 ‘캐리커처’

‘우리들의 블루스’ 발달장애인 연기
본업 조명한 영화 ‘니얼굴’도 눈길
“얼굴 생김새 다 다르지만 다 예뻐
줄 서 있는 사람들 보면 기분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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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가 지난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니얼굴’의 주인공으로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발달장애인인 정 작가는 최근 서울신문과 만나 “사람을 보면 어떤 색이 떠오른다. 그걸 그림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김명국 기자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정은혜 캐리커처 작가가 지난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니얼굴’의 주인공으로 다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발달장애인인 정 작가는 최근 서울신문과 만나 “사람을 보면 어떤 색이 떠오른다. 그걸 그림으로 그린다”고 말했다. 김명국 기자
“밖에 나가면 정말 많이 알아봐요. 여기 오는 길에도 사람들이 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하더라고요. 힘들진 않고, 좋아요.”

정은혜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 30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그는 더위를 잊은 듯 들뜬 표정이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해녀 영옥(한지민)의 발달장애인 쌍둥이 언니 영희로 등장해 큰 사랑을 받은 그의 본업은 캐리커처 작가다. 경기 양평 문호리에서 매달 열리는 리버마켓에서 부스를 차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2016년부터 시작한 작업의 결과물은 4000명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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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담은 ‘니얼굴’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정 작가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담은 ‘니얼굴’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제공
최근에는 이런 정 작가의 모습을 찬찬히 따라간 다큐멘터리 ‘니얼굴’이 개봉하기도 했다. 이 다큐는 장애인으로서 겪는 불편함이나 사회적 차별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개인으로서, 작가로서의 ‘정은혜’를 생동감 있게 들여다본다. 카메라는 잠에서 막 깨 신경질이 난 모습부터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림을 그리며 웃는 모습까지 다양한 일상을 풍부하게 담는다. 그를 바라보는 세심한 클로즈업 샷이 특히 돋보인다. 하루에 수 시간씩 꼬박 그림만 그리느라 부르트고 갈라진 손, 마켓 천막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찡그리는 얼굴, 스케치에만 집중하는 눈빛 등이 그렇다.

이 근원엔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아버지 서동일 감독이 있다. 원래 정 작가는 만화가인 어머니 장차현실 작가와 둘이 살다가 2008년 서 감독과 ‘가족식’을 올리면서 한가족이 됐다. 서 감독은 “예전엔 다운증후군의 특징적인 외모, 어색한 행동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언어적 소통이 어려우니 은혜씨는 집에서 그냥 혼자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서 돌아오는 시선이 따가우니 날카로운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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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린 캐리커처 자화상
직접 그린 캐리커처 자화상
하지만 2013년 우연히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한 캐리커처 작업은 삶을 바꿨다. 마켓에 나간 정 작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걸 보고 그림을 그린다. 한 번도 미술을 배워 본 적 없는 그의 손끝에서 독창적이고 색다른 얼굴이 재탄생한다. 서 감독은 “은혜씨는 남들과 다른 소통의 채널이 있다. 그게 그림”이라며 “얼굴을 대면하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 작가는 “그냥 그리는 게 좋았다”고 한다. 그는 “원래 한 명 그릴 때 2시간 걸렸는데 이제는 20분 정도면 한다. 속도가 빨라졌을 때 ‘내가 많이 늘었구나’ 생각한다”며 “사람들 얼굴과 생김새가 다 다르니까, 계속 그림을 그린다. 다 예쁘다”고 말했다.

작은 그림에서 시작된 변화는 크다. ‘우리들의 블루스’ 속 외로운 영희와 달리 현실의 정 작가는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리버마켓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단골 팬도 생겼다. 작품을 받은 뒤에 재주문하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서 감독은 “그림을 매개로 해서 종래에는 불가능했던 관계가 만들어지고, 비로소 개인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 같다”며 “드라마 섭외 때도 사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막상 대본을 보니 은혜씨의 존재감이 돋보여서 노희경 작가와 제작진에 정말 감사했다”고 전했다.

정 작가는 “나를 보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내 마음도 달라졌다”고 즐거워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줄줄이 서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제가 예쁘니까 그런가 봐요. 하하.” 

김정화 기자
2022-06-2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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